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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궁금] 경력 30년차 경찰이 ‘탐정’ 공부를 한다고?
"오랜만에 암기하려니 범인 잡는 것보다 더 ‘진땀’을 뺐죠."
지난 12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에서 ‘생활정보지원탐색사(정탐사)’ 2기 수료식이 열렸다. 이날 전·현직 경찰관 30여명이 정탐사 자격을 얻었다. 정탐사는 대한탐정연합회 (KPDA)에서 관리하는 민간자격으로, 일반인의 의뢰를 받아 도난 당한 물건을 찾아주거나 실종자 위치추적, 특정인물의 평판조사 등의 일을 한다.
앞서 지난달엔 서울 동작경찰서 소속 경찰 47명이 ‘PIA민간조사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 자격증은 한국특수직능교육재단에서 관리하는 민간자격으로 2002년부터 18년간 발행돼오고 있다. 이들은 경찰력 사각지대에서 민⋅형사 피해자 구제를 돕는다.
이른바 ‘탐정’ 자격증들이다. 전직은 물론 현직 경찰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 협회 측은 출퇴근 시간이 불규칙한 경찰 업무를 고려해 직접 경찰서로 출강도 나간다고 한다. 이날 수료식에서 만난 경찰들은 하나같이 "퇴직 후의 인생 2막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탐정 관련 자격증 12개… "시험 보랴 범인 잡으랴 분주"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급되고 있는 탐정 관련 자격증은 모두 12개. 8개 민간단체에서 발급 중이다. 이중 3개가 ‘실무 자격증’이고 나머지는 학술용에 가깝다. 실무 자격증의 경우 교육 후 두 차례의 필기시험 등을 거쳐 얻을 수 있다. 보통 범죄학과 범죄심리학, 법학개론, 민간조사학(탐정학)개론 등 4~5과목 시험을 봐야 한다. 수사기관에서 5~10년 이상 일한 경우 1차 시험을 면제받을 수 있다는 점도 경찰들이 선호하는 이유다.
하금석 한국특수직능교육재단 회장은 "경찰관의 경우 이미 업무 현장에서 충분한 지식과 경험을 쌓았다고 보기 때문에, 실무 관련 과목들에 한해서 필기시험은 불필요하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대신 경찰관들은 민간조사관계법, 민간조사실무 등 2차 필기시험으로 두 과목만 준비하면 된다. 그러나 수십년 만의 공부가 쉬울 리가 없다.
서울 남대문경찰서 강력팀에서 ‘정탐사 정보통’으로 불린다는 차윤주(55) 경위는 "한달여 동안 매일 시간을 내 시험공부를 했다"며 "일하기도 바쁜데, 30년만에 하는 공부를 하루도 빠짐없이 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라고 말했다. 차 경위는 "불법행위가 빈번한 흥신소와 달리 정탐사를 비롯한 ‘탐정’들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활동하도록 돼 있어 흥신소와는 다르다"고 했다. 차 경위 설명처럼 정탐사는 현행법을 엄격히 따르기 때문에 조사 대상의 사생활을 함부로 침해하거나 개인정보를 유출하지 않는다.
한국특수직능교육재단에 따르면 PIA 민간조사사 자격 취득자 중 전·현직 경찰관의 비율은 14%다. 유일하게 한 직군에서 10% 이상의 비율을 보인 셈이다. 자격증을 취득한 경찰관 인원도 2008년 122명에서 2018년 628명으로, 10년만에 5배가 늘었다.
◇경찰 중 탐정 시험 응시 절반 이상이 40·50대…"퇴직 후에도 전문성 살릴 수 있어"
경찰들이 탐정 자격 시험을 보는 가장 큰 이유는 ‘노후대비’다. 퇴직 후 30년 가까이 남은 인생 동안 제2의 직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경찰 업무를 살릴 수 있는 업종이 한정적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차 경위는 "선배들 대부분이 퇴직 후 아파트나 학교 보안관 일을 하는데, 조사실에서 범죄자를 심문하다가 갑작스럽게 단순 업무를 하는 것에 상실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말했다. 우왕명 성북경찰서 정릉2파출소 소장 역시 "경비지도사나 공인중개사 시험도 준비는 많이들 하는데, 경비지도사는 취득해봐야 일자리가 없고 공인중개사는 경찰 업무와는 전혀 다른 일이라 합격이 어렵다"며 "30여 년 동안 쌓은 전문성을 유지하면서 일할 수 있는 노후대비책은 ‘탐정’이 거의 유일하다"고 했다.
실제로 탐정 자격증의 하나인 PIA 민간조사사 자격을 취득한 경찰 중 50대가 27%로 가장 높았고, 40대가 24%를 차지했다. 중년이 절반 이상인 것이다. 최근 동료들과 함께 PIA민간조사사 자격증을 취득한 동작경찰서 소속 한 경찰은 "퇴직하고 바로 민간조사사 업무를 시작하진 못 하겠지만, 그래도 자격증이 생겨 든든하다"고 말했다.
통상 자격증을 취득하면 개인이나 여럿이 사무실을 차려 의뢰를 받는다고 한다. 한건당 일주일까지 걸리는데 비용은 400만원에서 500만원 선이라고 한다. 민간조사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장모씨는 "가출 가족 소재나 불법체류자 추적 등을 적게는 2명에서 많게는 5명까지 팀을 꾸려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조사를 한다"며 "사무소마다 격차가 있겠지만 월 800만원가령의 수익을 거둔다"고 했다.
◇불법과 합법 사이…법제화 10년 넘게 ‘미루기만’
다만 직업을 ‘탐정’이라고 소개하지는 못한다. 사무실도 통상 서비스업 등으로 등록한다. 이른바 ‘탐정 자격증’들은 국가공인자격이 아닌 민간 자격증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특히 불법과 합법의 경계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엔 ‘특정인의 소재 및 연락처를 알아내거나 금융거래 등 상거래관계 외의 사생활 등을 조사하는 일’ ‘정보원‧탐정 그 밖에 이와 비슷한 명칭을 사용하는 일’ 등을 금지하고 있다. 지난해 헌법재판소는 탐정업을 금지하고 탐정이라는 명칭도 쓸 수 없게 한 현행 신용정보법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결론 냈다.
탐정 업무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미행도 개방된 장소에서 사람을 쫓아가거나 자주 가는 곳에 잠복하는 것이 불법행위인 ‘스토킹’에 해당하는지도 모호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탐정이라는 직업을 국가가 공인하자는 취지의 법안은 17대 국회부터 지속적으로 발의됐지만 모두 폐기됐다. 현 20대 국회에서도 윤재옥 자유한국당 의원이 2016년 ‘탐정업’의 공인화와 공인탐정 법인 및 협회 설립 허용 등을 골자로 하는 ‘공인탐정법안’을 대표 발의했으나, 3년째 상임위원회 심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
탐정업을 공인하는 것에 부정적 의견도 적지 않다. 대한변호사협회 측은 "탐정 업무는 이미 공적영역에서는 수사기관이, 사적 영역에서는 변호사가 그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기 때문에 불필요하다"며 "탐정업 특성상 정보 주체에 대한 동의 없는 개인정보 수집행위, 도청, 불법촬영 등이 행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법에 저촉될 우려가 크다"고 했다.
서울 내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은 "문재인 정부 들어 탐정 관련 민간 자격증을 확대한 만큼, 법적으로 권한을 정확히 정해주는 것이 더 큰 논란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권오은 기자 oheun@chosunbiz.com] [이은영 기자 eunyoung@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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